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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시인, 벌초가伐草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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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시간전
 
추석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먼저 선산으로 향한다. 계절은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지만, 바람에는 어느새 가을의 냄새가 배어 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예초기의 날을 새로 끼고 낫과 장갑을 챙긴다. 벌초하기 위한 준비다. 내게 벌초는 단순히 무성한 풀을 베는 일이 아니다. 조상을 찾아뵙는 길이며, 흩어진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이다. 무엇보다도 내 삶의 뿌리를 다시 확인하는 의식이다.
 
우리 조상들은 무덤을 죽은 자의 집이라고 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 집을 돌보듯, 떠난 이의 집도 정갈하게 가꾸는 것이 자손의 도리라고 믿었다. 음력 칠월 보름을 지나 추석이 오기 전에는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는 벌초를 했다. 처서가 지나면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씨를 맺기 때문에 그 전에 베어야 다음 해 잡초가 덜 무성해진다는 생활의 지혜도 그 속에 담겨 있다.
 
예전에는 벌초가 집안의 큰 행사였다. 아침 일찍부터 도시락을 싸고 낫과 숫돌을 챙겨 온 가족이 선산으로 향했다. 어른들은 능숙하게 풀을 베고 아이들은 잘라낸 풀을 긁어모았다. 점심 무렵이면 커다란 참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보리밥에 된장에 찍은 풋고추를 나누어 먹었다. 땀에 젖은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고, 사촌 동생들은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으로 산을 뛰어다녔다. 그때의 벌초는 노동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름을 다시 확인하는 잔치였다.
 
지금도 선산에 오르면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풀은 뿌리까지 잘 베어야 한다.”“봉분에 상처 나지 않게 조심해라.”어린 시절에는 잔소리처럼 들리던 말들이 세월이 흐른 지금은 삶을 알게 한 귀한 가르침이었음을 깨닫는다. 사람도 풀과 같아서 마음속 잡초를 제때 베어내지 않으면 욕심과 미움이 씨를 맺고, 그것이 또 다른 번뇌를 키운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되었다.
 
예초기를 돌리던 동생이 잠시 쉬었다 하자며 얼음물을 건냈다. 쉬는 틈에 그동안 확실히 몰랐던 벌초伐草와 사초莎草와 금초禁草의 차이를 물었다. 중학교 교장인 동생은 웃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검색하더니 읽어 주었다.“벌초는 풀을 베는 일이고, 사초는 봉분을 새롭게 다듬는 일이고, 금초는 본래 금화벌초禁火伐草의 준말로 산불을 조심하며 묘역을 가꾸는 일을 뜻”이라고 했다. 설명을 들으며 대학을 나왔다는 사람이 조상을 모시는 가장 기본적인 말조차 정확히 모르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다.“조상을 잊으면 뿌리를 잃는다.” "신종추원愼終追遠이 효의 근본이다.“라고 했다. 부모의 마지막을 정성껏 모시고, 돌아가신 조상을 오래도록 추모하는 것이 사람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논어에서 공자가 말한 제여재祭如在, 제신여재祭神如在도 같은 맥락이다. 제사를 지낼 때는 조상이 눈앞에 계신 것처럼 정성을 다하라는 가르침이다.
 
벌초를 하는 동안 숙부님은“처삼촌 벌초하듯 하지 마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건성으로 풀을 베면 안 된다는 뜻으로 봉분은 물론 봉분 둘레에 풀 한 포기라도 남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낫으로 풀을 베고 손으로 마른 잎을 걷어내며 정성을 다했다.
 
해마다 벌초를 하러 간 선산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아이였던 조카는 어느새 예초기를 메는 청년이 되었고, 부모님 곁에 없던 봉분 하나가 지근咫近에 새로 생겨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월은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사람만 변해 가는 것이었다.
 
벌초를 마친 뒤 봉분 앞에 서면 마음이 맑아졌다.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어깨는 천근만근 무겁지만, 가슴속에 설명하기 어려운 평안함이 스며들었다. 조상님께“올해도 잊지 않고 와 벌초했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리면 칭찬을 받는 기분이었다. 어릴 적에는 힘든 노동으로만 여겼던 벌초가 이제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과연 부모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식으로 살아왔는지, 후손들에게 떳떳한 어른으로 남을 수 있을지를 자신에게 물었다.
 
요즘은 장묘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화장과 수목장이 늘어나고 핵가족화되어 선산을 찾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벌초 대행업체가 성업을 이루고, 관리인의 발걸음이 묘역을 오가는 시대가 되었다. 시대의 변화는 막을 수 없지만, 한 가지 변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면 조상을 기억하는 마음이다. 벌초의 본질은 풀을 베는 기술이 아니라 기억을 이어가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무덤은 죽음을 말하는 공간이 아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을 살다 간 삶의 흔적이며, 남겨진 사람들이 사랑과 그리움을 이어가는 자리이다. 풀은 해마다 자라고 해마다 베어진다. 그러나 조상을 향한 마음까지 함께 무성해졌다가 시들어 버려서는 안 된다. 벌초는 자손의 마음을 다듬는 일이며, 삶의 근본을 일깨우는 일이다.
 
산을 내려오며 동생이 말했다.“형, 우리가 죽으면 누가 우리 벌초를 해 줄까?”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언젠가 우리도 누군가의 조상이 될 것이다. 후손에게 벌초를 바라기 전에 먼저 부모의 묘를 얼마나 정성껏 찾았는지, 조상을 얼마나 기억하며 살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조상에게 죄스럽다.
 
선산에는 오늘도 바람이 분다. 풀은 다시 자랄 것이고 계절은 또 한 바퀴를 돌아 추석을 데리고 올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같은 산길을 오르면서 내 마음도 조금씩 달라진다. 젊은 날에는 의무로 올랐던 산길이 이제는 감사의 길이 되고, 낫을 들던 손은 어느새 기도를 모으는 손이 되었다.
 
벌초는 조상의 무덤을 손보고 가꾸는 일일 뿐만 아니라, 흐르는 세월 속에서 조상의 은덕을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의 도리를 깨닫는 일임을 나는 선산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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